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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예고범 리뷰: 사법 불신, 사적 제재, 미디어 영향

by 패츠 2026. 6. 8.

예고범

범죄자가 제대로 처벌받는 세상, 당연한 것 아닐까요? 그런데 저는 뉴스를 보면서 점점 그 확신이 흔들립니다. 일본 영화 예고범을 보고 나서 통쾌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꼈고, 그 감정의 이유를 한동안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한 오락을 훨씬 넘어섭니다.

신문남이 등장한 배경, 왜 우리는 열광했나

영화 예고범은 신문지를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남자, 이른바 신문남이 악덕 기업과 부패한 권력자를 공개적으로 응징하는 이야기입니다. 집단 식중독을 일으키고도 사과 한 마디 없던 식품 기업이 예고대로 불에 타고, 여론 조작으로 정치적 이득을 챙기던 의원의 민낯이 폭로됩니다. 경찰의 추적을 비웃듯 유유히 사라지는 그의 모습에 대중은 환호했습니다.

저도 솔직히 처음 이 장면들을 볼 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는 명확했습니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스크린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신문남의 실체는 더 복잡합니다. 주인공 오쿠다 히로키는 IT 회사에서 파견직으로 3년을 일했지만 정직원은커녕 동료들의 조롱과 모욕만 돌아왔습니다. 결국 위궤양을 얻고 2년의 공백기를 보낸 뒤, 불법 산업 폐기물 처리 현장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살아가게 됩니다. 사회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이 서로를 가족처럼 의지하다가, 동료 비실이 급성 신부전으로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세상을 향한 마지막 메시지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신문남 프로젝트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의 산물이었습니다. 사회적 배제란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노동 시장, 사회적 관계, 제도적 참여에서 동시에 밀려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오쿠다와 동료들은 그 전형적인 사례였고, 영화는 이를 감정적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사법 불신이 키운 사적 제재의 심리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과 일본이 이렇게 닮았나 싶었습니다. 집단 식중독 피해자들이 사과조차 받지 못하는 장면, 정치인이 SNS 여론 조작으로 지지 기반을 넓히는 장면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두 나라가 문화적으로 다른 부분도 많지만, 돈과 권력이 있으면 처벌을 피해 간다는 감각은 놀랍도록 비슷하게 공유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감각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2023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표현에 공감한다고 응답했습니다(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이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신이 오래전부터 누적되어 온 것입니다.

여기서 사적 제재(vigilante justice)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사적 제재란 국가 공권력을 거치지 않고 개인 또는 집단이 스스로 범죄자를 응징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역사적으로는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공백에서 생겨났지만, 현대에는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질수록 그 심리적 매력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디어에서 사적 제재를 다루는 콘텐츠가 왜 이렇게 늘어나고 있는지도 같은 맥락입니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도파민(dopamine)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유리합니다. 도파민이란 뇌에서 보상과 쾌감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자극적인 콘텐츠일수록 더 강한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권선징악 서사는 그 구조 자체가 도파민 반응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제가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한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런 콘텐츠가 늘어나는 것이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는 분노가 미디어 소비를 통해 대리 충족되고 있다는 신호로 읽어야 합니다.

사적 제재가 가져오는 구조적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법 시스템의 권위가 약해지고,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더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 선인과 악인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사고방식이 강화되어, 혐오와 집단적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사적 제재의 대상이 잘못 지목될 경우,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날 위험이 있습니다.
  • 콘텐츠 플랫폼은 이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유인이 큽니다.

이 영화가 알려주는 것, 우리가 해야 할 고민

영화 예고범의 결말은 그래서 더 씁쓸합니다. 오쿠다는 혼자 모든 죄를 떠안고 죽음을 선택합니다. 동료들을 지키기 위한 희생이었지만, 그 결말은 사적 제재가 어떤 식으로 끝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는 진심이었을 테지만, 그 방식이 가져온 것은 결국 한 사람의 죽음과 남은 이들의 상처였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느꼈던 통쾌함의 정체를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그 감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처벌받아야 할 자가 처벌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문제는 그 감정을 해소하는 방식이 사법 시스템을 통해서가 아니라 미디어 속 대리 폭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법치주의(rule of law)란 어떤 권력도 법 위에 있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불신이 쌓일수록, 사람들은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는 욕구를 갖게 됩니다. 2023년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국민의 사법 신뢰도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체감 신뢰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출처: 법무부).

이 영화를 보며 통쾌했다면, 그 감정을 현실의 사법 시스템을 더 강하게 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디어 속 사적 제재에 열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구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고범이 던진 진짜 질문은 어쩌면 바로 그것일지도 모릅니다.


참고한 유튜브 영상 - 아가리또무비데쓰 <예고범 리뷰>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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