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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크루엘라 리뷰: 꿈의 부재, 진로 고민, 열정

by 패츠 2026. 5. 23.

크루엘라

쇼츠로 장면 몇 개만 접했던 영화를 온전히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화려한 패션 영화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머릿속에 남은 건 드레스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저렇게 대단한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꿈이 없어서 고민인 사람에게도, 꿈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에게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입니다.

꿈의 부재와 열정의 가치

크루엘라의 주인공 에스텔라는 열두 살 때부터 패션에 대한 열정이 폭발적으로 드러납니다. 첫 등교일부터 교칙을 어기고, 런던으로 이사하는 길에도 쇼윈도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부러움과 이상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부러움은 당연한 감정이었고, 이상함은 제가 어렸을 때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이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 배우고 싶은 게 없다고 하면 게으른 아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게으른 게 아니라 진짜로 끌리는 게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배우고 싶은 거 있으면 학원 보내줄게"라고 했을 때, 저는 진심으로 없었습니다. 그냥 집에서 책 읽고 애니메이션 보고 영화 보는 게 좋았는데, 그게 꿈이나 열정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이지 않으니 항상 어딘가 빈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정체성 유예(Identity Moratorium)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정체성 유예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탐색 중인 단계를 의미합니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이 정의한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서도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이 정체성 탐색 과정이 핵심 과업으로 다뤄집니다. 

꿈이 없는 게 결함이 아니라 탐색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인데, 그걸 알아도 막막한 건 사실입니다. 에스텔라처럼 열정이 명확한 사람이 부러운 이유는 단순히 꿈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방향이 있으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점, 그게 진짜 부러웠습니다.

진로 고민과 직업 선택에 대한 고찰

에스텔라는 런던에서 10년을 도둑질로 연명하면서도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버리지 않습니다. 결국 당대 최고의 백화점에 취직하지만, 처음 맡은 일은 화장실 청소와 잡일입니다. 이 장면이 현실적으로 와닿았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결심해도 처음부터 그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 간극이 많은 사람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와닿았습니다.

진로 고민을 하다 보면 반드시 한 번은 마주치는 질문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걸 할 것인가, 해야 하는 걸 할 것인가. 저도 이 질문 앞에서 꽤 오래 멈춰 서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해야 하는 일을 하면 수입은 생기는데 일하는 매 순간이 소모감으로 채워집니다. 관심이 없으니 집중도 안 되고, 집중이 안 되니 성취도 따라오지 않고, 성취가 없으니 의욕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입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을 쫓아가기엔 당장의 현실이 버팁니다.

직업 선택에서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와 외재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의 관계는 심리학에서 꽤 오래 연구된 주제입니다. 내재적 동기란 외부 보상 없이 활동 자체에서 만족을 얻는 동기를 말하고, 외재적 동기란 급여나 인정처럼 외부 보상을 위해 움직이는 동기를 의미합니다. 미국 심리학회(APA)에 따르면, 내재적 동기가 높은 상태에서 일할 때 장기적 성과와 직무 만족도가 모두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30대 청년층의 직업 만족도 중 가장 큰 영향 요인은 급여가 아니라 "일의 의미와 성장 가능성"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

돈을 좇아 선택한 직업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결국 번아웃(Burnout), 즉 극심한 정서적 소진 상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진로를 선택할 때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내가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동기가 내부에서 오는가, 외부에서 오는가
  • 해당 직무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가
  • 초반의 낮은 보상을 버텨낼 수 있는 다른 이유가 있는가
  • 싫어하는 일을 오래 했을 때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

에스텔라는 화장실을 닦으면서도 패션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게 뭔가"라는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크루엘라의 열정과 열정의 방향

에스텔라는 결국 크루엘라라는 또 다른 자아를 통해 세상에 나섭니다. 크루엘라라는 페르소나(Persona), 즉 외부 세계에 드러내는 사회적 얼굴을 통해 억눌렸던 열정을 폭발시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캐릭터 설정을 보면 "천재는 원래 저렇게 태어나는 거야"라고 치부하기 쉬운데, 저는 다르게 봤습니다. 에스텔라의 재능보다 인상적인 건 열정의 방향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잘하는 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잘하는 것도 결국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에스텔라가 달랐던 건 IQ나 타고난 감각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방향이 있으면 10년의 시간을 도둑질로 버텨도 꿈이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좋아하는 것 없이도 살 수는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스텔라를 보고 나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게 없다는 게 그냥 개성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숙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성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것과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겉에서 보면 비슷해 보여도 5년, 10년이 쌓이면 완전히 다른 곳에 서 있게 되니까요.

크루엘라는 복수극이기도 하고 성장담이기도 하지만, 저한테는 "열정이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 반응하는지 오래 관찰해야 발견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꿈이 없어서 막막한 분들에게, 혹은 꿈이 있지만 현실 앞에서 멈춰 선 분들에게 이 영화를 한 번 직접 보실 것을 권합니다. 줄거리를 아는 채로 봐도 생각할 거리가 충분합니다. 저도 쇼츠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나니 전혀 다른 영화였습니다. 본인이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고 싶을 때, 꺼내 보기 좋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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