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오랫동안 외면했습니다. 한국사를 공부할 때마다 근현대사 파트가 나오면 책을 덮고 싶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일제강점기 다음으로 화가 나는 시대가 바로 1980년대였는데, 그걸 영화로 보면 백 퍼센트 더 분해서 울 것 같다는 게 뻔히 보였습니다. 결국 볼 영화가 없어서 틀었다가, 예상대로 눈물이 줄줄 났습니다. 그런데 화만 난 건 아니었습니다.
1987년을 스크린 위에 다시 세운 방법
이 영화에서 제가 처음 놀란 건 화면의 질감이었습니다. 요즘 영화들이 크레인이나 스테디캠처럼 카메라를 부드럽게 움직이는 장비를 적극적으로 쓰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핸드헬드(handheld) 촬영 방식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핸드헬드란 카메라를 삼각대나 장비에 고정하지 않고 촬영자가 직접 손에 들고 찍는 방식으로, 화면에 자연스러운 흔들림이 생겨 다큐멘터리처럼 리얼한 느낌을 만들어냅니다. 거기에 수동 줌 렌즈와 빈티지 광학 렌즈까지 더해지면서, 인물 주변 경계가 살짝 번진 듯한 옛 필름 특유의 질감이 살아났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시간, 장소를 알려주는 자막도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처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타이포그래피란 글자의 서체, 크기, 배치 등을 시각적으로 설계하는 기법인데, 이 영화에서는 타자기로 찍어낸 것 같은 서체를 써서 당시 수사 보고서의 질감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보는 내내 이게 영화인지 기록 문서인지 경계가 흐릿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실제 박종철 기념관이 있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합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당시 '해양연구소'로 위장했고, 영화에서는 '북해양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이 건물은 현재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지정되어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되었습니다(출처: 민주인권기념관). 고문이 자행됐던 바로 그 공간에서 촬영이 이루어진 셈이니, 배우들이 느꼈을 무게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시대 재현의 정밀도를 높인 요소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핸드헬드 카메라와 수동 줌 렌즈로 다큐멘터리 질감 구현
- 타자기 스타일 타이포그래피로 수사 보고서 분위기 재현
- 실제 민주인권기념관(남영동 대공분실) 현장 촬영
- 부검 장면, 접견 기록부, 당시 신문 기사까지 고증을 거친 소품 배치
- 빈티지 렌즈 사용으로 옛 필름 색감 구현
배우들이 만들어낸 인물, 그 이면의 이야기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것 중에 가장 강렬했던 건 김윤석 배우의 박처원 역이었습니다. 평안도 출신 인물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투리를 연습했다는 사실, 의상에 패드를 대고 키높이 구두를 신어 체격을 크게 보이도록 했다는 사실, 분장팀이 말론 브란도의 대부 이미지를 참고해 M자 머리라인과 특수 마우스피스까지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보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냥 '악역 연기'가 아니라 실존 인물을 재구성한 것이라 김윤석 배우 본인도 이제까지 했던 어떤 악역보다 힘든 작업이었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미장센(mise-en-scène) 측면에서도 섬세한 선택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소품, 배경을 종합적으로 설계하는 개념입니다. 부검 장면에서 삼베 모자를 쓰고 온 박종철 열사의 삼촌, 욕조 옆에 남겨진 물 흔적, 바닥에 놓인 소품들은 대사 한 마디 없이도 물고문이 있었음을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이건 제가 책으로 읽을 때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와닿았습니다.
하정우 배우의 하 검사 역도 생각보다 훨씬 복합적이었습니다. 술병을 핥는 코믹한 첫 등장, 껌을 차 유리에 뱉는 즉흥 연기, 전화기를 집어던지는 콘티를 수화기를 내려치는 것으로 바꾼 아이디어까지, 그가 현장에서 만들어낸 선택들이 인물에 생동감을 더했습니다. 사우나에서 탕에 들어가 대화하는 장면도 하정우 배우의 아이디어였다는 걸 알고 나니 그 장면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문성근 배우가 안기부장으로 특별출연했는데, 그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문익환 목사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은 제게 꽤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역사적 상징성(historical symbolism), 즉 특정 인물이나 사물이 역사적 맥락 안에서 갖는 의미가 캐스팅 한 장에 그대로 압축된 셈입니다. 또한 이원 배우가 치안본부 강 본부장으로 등장하는데, 그는 실제로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 대행으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을 직접 이끌었던 실존 인물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그의 장면을 다시 보면 배우와 역사가 겹쳐지는 느낌이 납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결과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이 내세운 현행 헌법에 의한 대통령 간선제 유지 발표, 즉 호헌(護憲) 선언은 국민의 직접 선거권을 사실상 박탈하려는 시도였고, 이것이 전 국민적 저항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6월 항쟁 기간 동안 전국 34개 도시에서 약 500만 명이 거리로 나왔습니다(출처: 국가기록원).
영화를 보면서 내내 화가 나고 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에 진짜 용기를 낸 사람들이 화면에 잡힐 때마다 전율이 일었습니다. 교도관, 검사, 기자, 신부, 그리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 한 사람의 용기가 역사를 바꾼 게 아니라, 각자의 신념이 쌓이고 모여서 바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신념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것, 그 작은 마음 하나에서 시작한다는 걸 이 영화가 보여줍니다.
화가 나도 외면하면 그만인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더 자세히 알고 기억해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 그게 역사를 배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행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가 불편하다면, 그건 아마도 제대로 보고 있다는 신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