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사랑이 식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알면서도 직시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영화 클로저(Closer)는 네 인물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결국 우리 모두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던집니다.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댄, 앨리스, 안나, 래리라는 네 남녀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화면 속 인물이 아니라 제 자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낯선 사람에서 가까운 사람으로, 그리고 다시 낯선 사람으로
영화 제목 '클로저(Closer)'는 단순히 '더 가까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제목은 일종의 역설적 서사 구조(Paradoxical Narrative Structure)를 담고 있습니다. 역설적 서사 구조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나 관객이 기대하는 방향과 반대로 전개되면서 의미가 심화되는 방식을 말합니다. 영화는 '안녕 낯선 사람'이라는 대사로 시작하는데, 저는 이 첫 장면을 보는 순간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댄과 앨리스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처음엔 그 낯섦이 매력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상대의 더 낯선 면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봐서 알지만, 가까운 사람일수록 실망이 커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를 내가 원하는 이미지로 채워 넣다가, 실제 모습이 드러날 때 그 간극을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투사(Projection)라고 부릅니다. 투사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욕구나 감정을 상대방에게 덧씌워 바라보는 심리 기제입니다. 영화 속 댄은 앨리스가 래리와 잠자리를 했을 거라 단정 짓고, 래리는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골라 믿습니다. 이 네 사람이 겪는 문제는 단지 불륜이나 배신이 아니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낯선 사람에서 가까운 사람이 되고, 다시 낯선 사람이 되는 이 과정은 어느 시대에나 반복됩니다. 실제로 관계 만족도 연구에서도 친밀감이 높아질수록 상대에 대한 이상화(Idealization)가 줄어들고 갈등이 증가한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고전 문학에서도, 10년 전 소설에서도, 지금 막 개봉한 영화에서도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인간이 관계에서 겪는 본질적인 고통은 달라지지 않은 겁니다.
영화 속 네 인물의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댄: 자기중심적 순간의 진심만 쫓는 사랑, 신뢰 부재
- 앨리스(제인): 일방적 희생과 거짓말로 유지되는 사랑, 결국 받을 수 없었던 사랑
- 안나: 자기 파괴적 선택을 반복하며 한 번도 만족하지 못한 사랑
- 래리: 타협으로 유지되는 사랑, 진실이 없는 관계
제가 이 목록을 처음 정리하면서 꽤 불편했습니다. 이 중 어느 하나도 완전히 남 얘기 같지 않았거든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우리가 사랑을 망치는 방법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반전은 앨리스의 본명이 사실 '제인 존스'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녀가 댄에게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 사용한 이름 '앨리스'는 추모공원에서 본 의인의 이름을 빌린 것이었습니다. 스트리퍼였던 제인은 미국을 떠나 영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그 이름에 담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정체성 재구성(Identity Reconstruction)'이라는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정체성 재구성이란 개인이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아상을 형성하려는 심리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제인이 앨리스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였던 겁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댄은 그 앨리스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후반부, 래리가 앨리스의 본명을 들어도 믿지 않는 장면은 이 문제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는 이유는 이미 자신이 믿고 싶은 버전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지 심리학에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을 지지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 편향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심하게 작동합니다. 오히려 낯선 사람에게는 열려 있다가, 친해질수록 상대를 틀 안에 가두려는 경향이 생기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요. 관계에서 확증 편향을 줄이려면 상대의 말을 해석하기 전에 먼저 있는 그대로 듣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이라고 부르며, 상대방의 감정과 의도를 판단 없이 수용하는 태도라고 설명합니다. 인간관계 갈등의 상당 부분이 소통 방식의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솔직히 저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댄도, 앨리스도, 안나도, 래리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려 했습니다. 다만 그 방식이 서로를 향해 있지 않았을 뿐입니다. 낯선 사람에게 끌리는 감정, 익숙한 사람에게 느끼는 권태, 상대를 내 방식대로 해석하려는 욕구. 이것들은 이 영화 속 네 인물만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유하고 있는 인간적 속성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불편하면서도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클로저를 보고 나서 '저 인물들은 왜 저럴까'가 아니라 '나는 지금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이 영화는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한 겁니다.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가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흐를 때, 그 여운이 오래 남는 이유도 바로 그 질문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