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를 하나만 꼽으라면, 고민 없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선택하겠습니다.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왓챠도 볼 게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 영화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이유가 뭔지 저도 완전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 글에서 줄거리와 함께 제가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한 번 보면 끝나지 않는 줄거리, 이렇게 흘러갑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2001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당시 일본 박스오피스 역대 1위를 기록했으며, 2003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습니다(출처: 아카데미 공식 사이트).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본 게 꽤 어렸을 때였는데, 그 감정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뭔가 지브리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일본 감성이 있는데, 이 작품이 그 정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사를 가던 치히로 가족은 길을 잘못 들어 낯선 터널을 지나게 됩니다. 터널 너머에는 음식 냄새에 홀린 부모님이 과식을 하다 돼지로 변해버리는 충격적인 장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치히로는 하쿠라는 소년의 도움을 받아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천 시설을 운영하는 유바바와 노동 계약을 맺게 됩니다. 여기서 노동 계약이란 단순한 고용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까지 빼앗기는 방식입니다. 치히로는 '센'이라는 새 이름을 받고 정체성의 일부를 잃은 채 일을 시작합니다.
이후 이야기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장면은 강신(河神) 에피소드입니다. 강신이란 말 그대로 강을 다스리는 신령을 의미하는데, 영화에서는 오물로 뒤덮인 물신으로 등장했다가 이물질을 제거하자 본래 모습인 강의 신으로 돌아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줄거리 이상의 환경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반복해서 봤는데, 솔직히 처음엔 그냥 신기한 장면으로만 봤다가 나중에야 그 의미를 파악했습니다.
영화 중반부에는 가오나시(顔無し)라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가오나시란 '얼굴 없음'이라는 뜻으로, 욕망을 흡수하고 주변의 감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존재입니다. 처음에는 조용하고 외로운 존재처럼 보이지만, 온천 안에서 탐욕을 자극받자 점점 거대하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이 캐릭터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서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제니바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습니다. 센은 다친 하쿠를 구하기 위해 가오나시와 함께 제니바의 집을 찾아갑니다. 도장을 돌려받은 제니바는 직접 머리끈을 만들어주며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하는데, 악인처럼 보였던 존재가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반전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더 풍부하게 즐기고 싶다면 알아두면 좋은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등장하는 신령 캐릭터 다수는 일본 전통 요괴 설화(요괴학)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 가오나시는 현대 소비 사회의 욕망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 이름을 빼앗기는 설정은 일본 민담에서 이름에 정체성이 깃든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하쿠의 정체는 치히로가 어렸을 때 빠진 강, 즉 코하쿠가와(琥珀川)의 신이었다는 것이 후반부 핵심 반전입니다
지브리와 지우펀, 직접 가보고 나서야 이해한 것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우펀이 센과 치히로의 배경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대만 여행을 갈 때마다 지우펀을 빼놓지 않는 이유는, 가서 직접 눈으로 보면 그 말을 그냥 넘기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비 오는 밤에 붉은 홍등이 켜진 계단 거리를 걸어 올라가면, 영화 속 온천 거리의 분위기가 그대로 펼쳐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너무 비슷합니다.
지우펀(九份)은 대만 북부 신베이시에 위치한 산간 마을로, 과거 금광 개발로 번성했다가 쇠락한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 세계관광기구(UNWTO)의 분류 기준으로 보면 문화유산형 관광지에 해당하는데, 이는 단순 경관보다 역사적·문화적 맥락이 방문 가치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의미입니다(출처: 세계관광기구 UNWTO). 실제로 지우펀은 건물 구조나 골목 폭, 계단 배치가 센과 치히로의 온천 거리 장면과 구도 면에서 매우 유사합니다. 제가 직접 두 번 방문했는데, 두 번 모두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브리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애니미즘(Animism)입니다. 애니미즘이란 자연 현상과 사물 하나하나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는 사상으로, 일본 신도(神道) 문화의 근간이 되는 개념입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이 바로 이 애니미즘이고, 일본 요괴 설화에 어느 정도 익숙한 분이라면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레퍼런스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배가됩니다. 저도 일본 요괴 관련 책을 조금 읽고 나서 다시 봤더니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1985년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가 설립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외에도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모노노케 히메 등 굵직한 작품들을 연속으로 내놓으며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았습니다. 단순히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성인 관객도 매번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만드는 서사 구조(내러티브)를 가진 작품들이라는 점이 지속적으로 재관람을 유도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서사 구조란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배치되고 전달되는지를 의미하는데, 지브리 영화는 어린 시절 볼 때와 어른이 되어 볼 때 전혀 다른 층위의 이야기가 읽힌다는 점에서 단연 독보적입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영화를 한 번 봤다고 끝나는 작품이 아닙니다. 저처럼 볼 게 없는 날 습관처럼 틀게 되는 분이라면, 다음번에는 일본 요괴 설화나 신도 사상에 대한 배경지식을 조금 갖추고 보시길 권합니다. 지우펀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부인이든 아니든 간에, 영화를 먼저 보고 가는 것이 훨씬 더 깊은 감동을 줄 겁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본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