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고 일본 청춘 애니메이션에 꽂혀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늑대아이'를 뒤늦게 접하게 되었는데, 보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이 "감독이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지?"였습니다. 호평 일색인 평가를 보고 더 당혹스러웠습니다.
설정오류: 감성으로 덮기엔 구멍이 너무 많다
제가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봤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서사의 개연성보다 의문점이 먼저 쌓였습니다. 늑대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난다는 설정 자체야 판타지 장르의 문법이니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늑대인간의 유전 방식이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유전학(genetics) 관점에서 보면, 유키와 아메가 늑대인간 형질을 100% 발현하는 것은 상염색체 우성 유전(autosomal dominant inheritance)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상염색체 우성 유전이란 부모 중 한 명이 특정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자녀에게 50% 이상의 확률로 그 형질이 전달되는 유전 방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 부분을 아무런 설명 없이 넘겨버립니다. "멸종된 늑대인간의 마지막 후예"라는 설정이 오히려 이 의문을 더 키웁니다.
아버지가 왜 홀로 나가서 죽었는지도 끝내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직장까지 다니던 사람이 가족을 두고 정처 없이 나갔다가 사망한 경위가 "그냥 그렇게 됐다" 식으로 처리됩니다. 어머니 하나 역시 대학을 중퇴하고 아이를 낳은 상황에서,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되더라도 서사적 설명이 부족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멍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 오래 찜찜하게 남습니다.
제가 특히 납득이 안 됐던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늑대인간 유전자가 자녀에게 100% 발현되는 근거가 없음
- 아버지의 실종 및 사망 경위가 서사적으로 설명되지 않음
- 감정 기복이 심한 시기에 변신 가능성을 통제할 교육 없이 학교에 보낸 판단
- 하나가 대학 중퇴라는 설정이 이후 이야기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불명확함
내러티브 개연성(narrative coherence), 즉 이야기 안의 사건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비추어 보면, 이 영화는 중요한 부분에서 그 선을 꽤 많이 넘습니다.
연출력: 인정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감탄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영상 연출이었습니다. 호소다 마모루 특유의 여름 질감, 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장면, 시골집수리 장면에서의 계절감은 분명히 뛰어납니다. 미장센(mise-en-scène), 쉽게 말해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들의 조화인데, 이 영화는 그 부분만큼은 수준급입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호소다 마모루의 연출 스타일은 일본 문화청 미디어예술제에서도 수차례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출처: 일본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실제로 '늑대아이'는 2012년 개봉 당시 일본 국내 흥행 수익 약 42억 엔을 기록했습니다(출처: 일본 영화제작자연맹). 여기서 일본 영화제작자연맹이란 일본 영화 산업의 제작·배급 통계를 공식 집계하는 업계 단체입니다. 대중적 흥행 면에서는 명백히 성공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연출력이 뛰어난 영화와 이야기가 잘 만들어진 영화는 별개입니다. 영상미에 대한 호평은 충분히 납득하지만, 그 호평이 스토리텔링의 허점까지 덮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2012년 개봉작이라는 시대적 맥락, 그리고 남성 감독 시점에서 바라본 모성(母性) 서사라는 배경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여지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와 "설득력 있다"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정체성: 영화가 던지는 질문, 그리고 남는 아쉬움
영화의 핵심 주제는 결국 정체성(identity)입니다. 정체성이란 개인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스스로 내리는 정의로, 심리학에서는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의 발달 이론에서 청소년기의 핵심 과제로 다뤄지는 개념입니다. 유키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아메가 늑대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장면은 이 주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지점만큼은 저도 어느 정도 공감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가 정해준 길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 그리고 하나가 그 선택을 막지 않는 장면은 분명히 울림이 있었습니다. 자율성(autonomy), 즉 외부 압력 없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는 오늘날의 부모-자녀 관계에 여전히 유효한 화두입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 메시지가 온전히 전달되려면 그 전제가 되는 서사가 튼튼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설득력 있게 쌓여야 그 선택의 무게도 살아납니다. 쇼우가 유키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장면이나, 아메가 숲 속 선생님에게 본능을 배워가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들이 앞서 말한 설정의 허점들 위에 놓여 있다 보니, 감동이 절반쯤 희석된 느낌이었습니다.
정리하면, '늑대아이'는 주제 의식과 영상 연출 면에서는 분명한 장점이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그 장점을 받쳐줄 서사의 내구성이 부족합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영상 스타일에 끌린다면, 같은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보는 것을 권합니다. 단, '늑대아이'를 스토리 완성도로 접근하면 저처럼 의문만 잔뜩 남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분이라면, 영상미를 감상하는 용도로 기대치를 조정하고 보시는 편이 훨씬 만족스러울 것입니다.